2025-06-02
'민증스틸아티스트' 유행? 가족 간 정치 갈등
실제 메시지 캡처까지…유머인가, 위법인가
"우리 아빠 OO당 찍을까 봐 주민등록증 숨겼다."
"부모님이 OOO 찍는대서 나도 민증 압수형에 처해야겠다."
"기호 O번 찍는 가족 있으면 민증부터 숨긴다."
오는 3일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모의 신분증을 '숨겼다'거나 '숨길 예정'이라는 자녀들의 사연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부모나 조부모의 정치 성향에 반감을 드러내며 "그들이 투표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친구가 진심 '민증 스틸 아티스트'라 부모가 단 한 번도 투표 안 해봤다"는 글까지 등장하며, 일부에선 해당 행동이 유머처럼 소비되는 상황이다.
2일 온라인커뮤니티에 따르면 실제 한 누리꾼이 공개한 가족 간의 메시지에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너 아빠 신분증 가지고 간 거 아니지? 아빠가 없어졌다고 아침부터 난리를 치고 전화하고 그러는데 너 가지고 갔냐, 설마. 못 살겠다"고 하소연 한다. 이에 대해 자녀는 "OOO 뽑으면 잘 산다. 걱정하지 마라"는 답을 남겼다.
또 다른 글쓴이는 "부모님과 정치 성향이 너무 달라 내 지지 후보 얘기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그래서 본투표 날 부모님 민증을 잠깐 숨길 예정"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가족 민증을 훔치는 건 선 넘은 행동이다", "부모님이 나와 다른 당을 지지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더 많은 유권자를 설득하거나 정치 활동에 나서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지, 가족의 투표권을 뺏는 건 명백한 권리 침해"라는 비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대 간 갈등, 웃어넘길 수 없는 권리 침해될 수도
가족의 투표를 막기 위해 신분증을 숨기거나 가져가는 행위는 단순한 가족 간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행위가 실제로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이런 행위는 전형적인 선거 방해"라며 "공직선거법 제237조는 위계나 사술,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노 변호사는 "신분증은 선거 참여를 위한 핵심 수단인 만큼, 이를 숨기거나 가져가는 행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자녀가 일방적으로 신분증을 감춘 행위만으로는 명확히 처벌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유재영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제242조는 투표를 방해할 목적으로 신분증명서를 '맡기게 하거나 인수한 경우'에 한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자녀가 일방적으로 신분증을 감춘 행위만으로는 해당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 변호사는 "또한 형법상 절도죄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가족 간에 일시적으로 신분증을 숨긴 것만으로 이를 인정하긴 어렵다"며 "설령 범죄가 성립하더라도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에 따라 처벌이 면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행위는 선거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법적 처벌 여부는 구체적인 정황과 법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의견도 존중해야"…민주주의의 역설
이처럼 정당에 대한 호불호가 세대 정체성의 일부로 굳어지면서 가족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분증을 숨긴 자녀들의 대부분은 "우리 가족이 OOO를 찍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선거를 일종의 '가정 내 투쟁'으로 보고 있다. 이와같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간극은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대 간의 정치적 갈등은 이전부터 늘 있었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들의 투표를 막는 경우가 있었는데, 요즘은 반대로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를 설득하거나 막으려는 모습이 연출된다"며 "이런 현상이 드러나는 이유는 SNS를 통해 공유되고, 일종의 놀이처럼 소비되기 때문인데, 그래서 더 새롭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문제는 투표가 개인의 헌법적 권리라는 점"이라며 "의견이 다르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농담이나 놀이처럼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자의 정치적 견해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21대 대통령선거 본 투표일은 오는 3일로, 투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이때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투표가 가능하다.
신분증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청소년증, 공무원증 등 사진과 생년월일이 명시된 공공기관 발급 증명서가 해당하며, 정부24 앱이나 PASS 앱 등을 통해 발급받은 모바일 신분증도 사용할 수 있다.
단 화면 캡처본은 인정되지 않으며 해당 앱을 실행해 실시간으로 제시해야 한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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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번 뽑을까봐 민증 숨겼다"…선 넘은 '유머' [이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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